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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뷰

사백년의 꿈 - 과거의 나에게 정복당하다

by 글벌레 2011.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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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백년의 꿈 리뷰 전에 한마디 ~
 그동안 재미있게 보았던 "욕망의 불꽃"이 어제 끝이 났습니다.
 때때로 엉성하고 실망스러운 구석도 있었으나 맡은 역을 열연해 주신 연기자 분들과
 맛깔스러운 대사들 덕에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든 드라마였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면을 생각한다면 욕망의 불꽃 마지막회, 50회 리뷰도 올리는게 맞는 것 같은데
 어제 아침에 제가 발행을 한 욕망의 불꽃 49회 리뷰가 50회의 리뷰라고 해도 될 만큼,
 49회에 대한 리뷰도 실제 방영된 50회를 보고 나서 쓴 것처럼 리뷰가 이루어져서

 욕망의 불꽃 마지막회 , 50회 리뷰는 아래 49회 리뷰로써 대신합니다. 
 
2011.03.27 - [드라마 리뷰] - 욕망의 불꽃 50회 마지막회 민재와 인기가 맺어질 수 있는 이유 

 


우선 생명 복제라는 것에 대하여 좀 거론을 하고자 한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생명 복제라는 것에 관심이 많다.
복제를 통하여 궁극적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들도 많이들 한다.

실제로도 다른 나라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자신이 사랑하던 반려견이 죽자,
그 세포를 냉동했다가 1억원인가 10억원인가 들여서 복제를 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명의 복제가 가능해짐으로써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가 있을까?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것은 허황된 생각임을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윤리적인 문제는 별론(別論)으로 하기로 하고, 인간의 신체를 복제해 낼 수 있는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하게 된다면 우리는 영생을 누릴 수가 있을까?
한마디로 그 대답을 한다면 당연히 No! 다.

그 이유는 우리의 신체는 복제되어질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경험과 기억은 복제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복제된 내가 태어난다면 그 복제되어진 개체는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나와는 다른 별개의 개체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복제된 나는 원래 존재하던 나와는 다른 경험을 하면서 다른 기억을 쌓아가며 성장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앞서 말한 반려견 복제의 경우에도 복제되어 태어난 강아지가 아무리 이미 죽은 자신의 반려견과
유전적으로 동일하다고 해도, 그 강아지는 죽은 강아지와는 다른 경험과 기억을 가지게 되기 때문에
결코 죽은 내 반려견이 되살아나 돌아온 것이라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경우에는 경험과 기억은 전적으로 100% 유전되지 않으므로
인간은 경험과 학습을 통해서만 인간으로서의 행동 양식을 보이는 반면

동물에 있어서는 생존을 위한 경험은 유전이 되는 것으로 보이므로
복제된 반려견이 이전의 내 강아지와 같은 행동 양식을 보일 수도 있지만,
이전의 내 개와 현재의 내 복제된 개가 경험한 것들이 다르므로
두 개는 나에 대하여 느끼는 친밀도부터가 달라질 것이다...

또 예를 들어 무엇보다도 복제된 나와 내가 함께 있을 때 "나"라는 인식은 누가 가지는가?
복제된 개체를 통하여 내가 가진 나라는 인식을 느낄 수 있는가? 당연히 아니다.

복제된 나는 복제된 나대로, 복제 개체의 원본인 나는 나대로 별개의  나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는 거다.

즉, 복제를 통하여 장기 이식 등에 있어서는 혁신을 이룰지는 몰라도 불로장생은 이룩할 수가 없다는 거다.

복제라는 것이 존재하지도 않고 그러한 개념 조차도 생각하지 못하던 과거의 사람들도
불로장생의 꿈은 가졌었다. 그랬기에 진시황은 있지도 않은 불로초를 구하라고 그 수많은
사람들을 사방팔방에 보냈던 것 아닌가?

복제도 불로초도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불로장생의 그 꿈을 현생과 환생으로 꾸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만약 나에게 전생이 있었다면 전생의 나와 지금의 나는 같은 존재일까?
그 대답 또한 역시 그렇지 않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복제에서 언급한 것들과 마찬가지이다.

종가집에 매장되지 않은 채 미이라화 된 여인의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해부학과 교수 희선은 미이라의 부검을 맡기 위해 한 고택으로 향하게 된다.

미이라로 누워있는 여인을 본 희선은 왠지 모를 슬픔이 느껴지고,
자신에게 미이라의 부검을 의뢰해 온 종가집의 종손 현민을 보자 왠지 알았던 사람 같다는 묘한 느낌을
가지게 된다.


부검을 맡은 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단지 피부 트러블인 줄로만 알았던 어깨의 검은 무늬가
문신으로 변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문신이 미이라에게도 같은 위치에 같은 문양으로 있음에 놀란다.
더하여 예전부터 꿈 속에서 자신의 어깨에 문신을 해 주던 남자가 현민이란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 그 머리카락을 미이라의 것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고 유전자 검사실에 주고, 검사 결과 자기의 유전자와 미이라의 유전자는 정확히 일치한다는 말을 듣는다.

왜 미이라가 된 희선의 전생인 수희는 희선의 몸에 자기의 흔적을 안기며
전생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희선에게 다가오는 것일까?

본 드라마의 프롤로그로 볼 때 수희는 (강제로) 몸이 더렵혀졌다는 이유로
집 안의 수치가 되어서 바깥과는 어떠한 연결 고리도 없는 사방이 벽으로 둘러 싸인 공간에 갇혀
굶어 죽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녀는 그렇게 죽어 가면서 서방님과의 행복한 날을 꿈꾸는 글을 적어 가며
갇혀서 죽어 가는 자기를 잊어 보려고 노력한다.
아마도 그렇게만 죽어 갔어도 그녀는 서방님과 다음 번 생에서의 행복을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뚫린 벽의 구멍을 통하여 자기가 죽기도 전에 새 장가를 드는 서방님을 보며
원망만을 품고 죽어 간다.

그러한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녀는 자기를 그렇게 비참하게 죽게 만든 가문과 남편이었던 현민에게도 복수를 하고 싶을 것이다.

다시 태어난 희선이 의사로서 무난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수희에게는 전혀 위로가 되지도 않는 일인 것이다.
희선의 행복을 자신은 모르고, 또한 수희의 경험과 기억은 희선에게 전혀 이어지지 않으므로.....

결국 수희는 복수를 하고, 자신이 생전에 누리지 못했던 행복을 희선을 통해 누리기로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 점점 더 그녀에게 자신의 그림자를 덮어 씌우는데......

극 도입부에 메스로 사람을 찔러 경찰서에 잡혀와 있는 그녀는 과연 희선일까?

아니면 희선을 통해 복수를 하고 새 삶을 살아 보려는 수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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