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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뷰

선덕여왕 40회 - 드라마에서 덕만이 결혼할 필요가 없는 이유

by 글벌레 2009.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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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0월 6일 화요일에 방송된
선덕여왕의 마지막 장면에서 미실이 데리고 들어온 춘추가 

" 골품제는 천한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면서 드라마는 끝을 맺게 되는데요.

여기서 그냥 두서없이 몇 가지 짚어 보기로 합니다.

"골품제는 천한 것이다"라고 왕 앞에서 말을 한다면 춘추는 죽은 목숨입니다.

진덕여왕까지의 모든 신라 왕들은 성골이기 때문에 왕이 된 겁니다.

그런데 왕 앞에서 그런 발언을 한다면
이는 마치 고려 무신 정권 시절에
만적이 "왕후장상(王侯將相)이 어찌 원래부터 씨가 있겠는가?"라고 외치면서 
난을 일으킨 것이나 진배없는 행위가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후일 상대등 비담의 난을 진압하고 
실세들 중 한 명으로 등극한 김춘추는 실세임에도 불구하고 왕이 되지 못합니다.
이유는 여자이지만 역시 성골인 승만(진덕여왕)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신라는 골의 나라였는데, 
어찌 어린 춘추가 감히 왕의 앞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후일 이 골품 제도가 신라의 멸망을 촉진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지만,
그렇게 될 때까지도 결코 신라는 스스로 골품 제도를 개혁할 생각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이리저리 보아도 춘추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거죠........ 

등장 인물들 도대체 나이들이 어떻게 되는 거죠 ?

선덕여왕 드라마에서는 다른 사극류와는 달리 연대 표시를 열심히 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나름대로 드라마가 보여 주는 분위기로 추론을 해 보기로 합니다.

일단 드라마 첫 방영 때를 더듬어 보면 왕이 된 백정(진평왕)은 즉위하고
얼마되지 않아 쌍생을 출산하는 것으로 표현이 되지만,

진평왕이 어린 나이인 15세에 등극하므로
20세에 쌍생을 출산하였다 해도 현재 드라마 내의 덕만이 묘령(妙齡)임을 감안한다면
진평왕의 나이는 이제 많이 잡아도 40대입니다.

진평왕은 565년생입니다.
그렇다면 드라마에서 진평왕 나이를 넉넉하게 잡아 주어 45세라고 한다면
현재 드라마는 609년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런데 김춘추는 604년생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겨우 6살짜리가 화백회의 장소에 들어와서 
자기가 이모의 남편이 되겠다고 하면서
골품제는 천한 것이다라고 자신의 소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춘추가 그 말을 할 때 미실은 젊은 모습으로 그 옆에 서있습니다.

그런데 진흥대제가 즉위한 것은
540년으로 그 나이 여섯살 때입니다.

그런데 미실은 진흥대제에게 색공하고, 진흥대제의 태자에게도 색공하고, 진지왕에게도 색공하고,
또 진평왕에게도 색공하면서
그 외에도 여러 남자들과 색을 즐기는 것으로 "화랑세기"에는 묘사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미실의 나이를 추정해 보면 
아마도 거의 진흥대제와 그 출생연도가 비슷했으리라 보입니다 .

즉, 진흥대제와 미실은 양쪽 모두의 나이가 20세 전후 무렵의 나이인 때 만나서
춘향과 이도령이 그랬듯이 열(熱)나는 남녀상열지사(男女相悅之詞)를 불렀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후 미실 나이 30대 후반경에 진지왕에게 색공하고
580년경에 마흔 살 정도의 나이로 진평왕에 색공을 하였을 것이라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여섯 살짜리 춘추가 골품제는 천한 것이다라고 말하는 옆에 선 미실은
최소한 65세 이상은 되었어야 한다고 추론이 됩니다.........

그러나 고현정씨 모습은 그거 아니죠 ? ㅡ ㅡ

거기다가 진평왕이 45세라면 아직도 그 재위 기간을 20년 이상 남겨둔 때입니다.
아직은 심장이 나빠지면 곤란한 때이죠 _ _

이상에서 살펴본 것만으로 보아도

드라마 선덕여왕은 함께 모여서 토론할 수 없는 인물들을 한 장면에 내세워
당대에는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말을 어린 춘추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드라마는 시작부터 지금까지
역사적 사실과 부합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는 말이지요........

또한 위작 여부로 논란이 심한,
드라마의 소재 제공처이기도 한 화랑세기의 연대와도 도통 맞지가 않고요.....

그런데 굳이 선덕여왕을 결혼시켜서 이제까지 능동적이며
스스로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온 덕만의 이미지에 흠을 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지요.

또 백과사전을 쭉 읽어 보면
선덕여왕은 처녀의 몸으로 등극한 후 후사를 위해 삼서를 두었다는 내용도 보이고
(결국 후사 못 얻음)

또, 여왕의 등극을 반대하는 용춘공을 굴복시켜 신하겸 남편으로 삼아
여왕에 등극했다는 글도 보입니다.
어쨌든 이 경우에도 삼서를 두고 후사를 얻지 못했다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러므로 드라마에서 선덕여왕을 결혼시키지 않는 것은
역설적으로 후사가 없었다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되게 됩니다.

많은 시청자들이 비담 - 선덕여왕의 러브 라인을 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만약 그 러브 라인을 완성시킬 경우
드라마 후반부에 나올 비담의 난은 비담의 난이 아닌
과거
우리 현대사 한 켠에서 본 12.12 사태라고,
김춘추와 김유신에 의한 그런 사태라고 그려져야 드라마의 개연성이 더욱 높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드라마가 아무리 개연성 있는 허구라 하지만
그렇게 그려야만 하게 드라마 내용이 전개될 경우는 정말 그 후폭풍은 어찌 버티시려고요?

드라마는 이제 삼분의 이 정도를 지나 후반부로 가고 있습니다.

덕만이 처녀로 선덕여왕으로 등극한 후 에피소드들은 굳이 덕만의 남편들을 거론 않더라도
스피디하게 끌고 갈 수 있으리라고 보입니다.

부디, 이제까지 이요원 씨를 통해 만들어 온 
덕만의 이미지를 선덕여왕 제작진이 깨어 버리는 일은 없으면 하는 바람을 남기며 글을 줄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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